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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

박봉수 작가, 꿈을 매개로 두뇌 속 세계를 탐구하다

 

글   아나 할사니(Anna Harsanyi, 독립 큐레이터)




 

꿈은 흔히 우리 내면의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자 우리의 무의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박봉수 작가는 이러한 내면을 다채로운 질감으로 해석하여 관객과 상호 소통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젝트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무의식의 다층적 본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작가는 몰입형 설치 작품, 참여형 전시, 퍼포먼스를 통해 폭넓은 시각 공간을 펼쳐 보이며 관객에게 두뇌 속 세계를 들여다볼 장을 마련해 준다.

 

박봉수 작가가 진행해온 대부분의 작품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디테일을 확장하면서 하나의 큰 주제를 이룬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인 <드림 옥션Dream Auction>으로, 드림 옥션이라는 이름 아래 선보인 여러 작품들은 꿈을 사고파는 한국의 독특한 풍습을 다루고 있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꿈풀이에 근간을 둔 일상적 문화로, 특히 친구나 친척 등 가까운 사이에서 꿈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서로의 꿈을 사거나 판다. 이러한 꿈 거래는 비공식적인 친근한 행위이지만, 한 사람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생각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상호 정서적 가치를 지닌다. 꿈의 거래는 선의의 기운을 전달하는 일인 동시에 환상에 근거한 우호적인 베풂의 행위다. 이러한 사회적 풍습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는 관객들에게 꿈의 체험이라는 못지않게 심오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여러 감각을 자극하는 시각 자료를 활용해 우리가 자각한 잠재 의식을 풍성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드림 옥션> 프로젝트에서 박봉수 작가는 워크숍 참가자들, 그리고 웹사이트를 통해 꿈을 수집한다. 이렇게 모은 꿈은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설치 작품의 형태로 기록, 재창조되거나 토론의 주제가 된다. 2019년 런던 코로넷 극장에서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차진엽과의 협업으로 선보인 <드림 리추얼 Dream Ritual>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춤과 전자 음악, 시각 영상이 결합된 멀티미디어 공연을 펼쳐 보였다. 이 몰입형 퍼포먼스에서 무대를 감싸고 투사되는 영묘한 분위기의 영상은 차진엽 무용가의 리드미컬한 몸짓과 그 사이사이를 메우며 울려 퍼지는 뮤지션 하임의 전자음으로 수면과 꿈의 상태를 불러일으켰다. 영상의 일부는 작가가 수집한 꿈과 관련된 단어들이 투사되며 추상적 무대에 한결 문자적 층위를 더했다. 한편 이 공연은 꿈의 상징적 거래가 될 드림 옥션을 준비하는 의식 역할을 하기도 하다. 이 의식의 토대가 된 이야기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에 기록된 문희 매몽설화로, 왕국과 군주의 운명을 두 자매의 꿈을 사고파는 행위로 보여준다. 

 

<드림 옥션>은 다양한 분야와 배경을 넘나드는 박봉수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예술 영역 밖으로 확장하는 참여형 작품이다. 작가는 스토리텔링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꿈을 해석해 나가는 워크숍을 진행한다. 이 워크숍에서 박봉수 작가는 꿈에 대한 대화를 이끌어내며 참가자들이 각자의 꿈 이야기를 나누고 나아가 꿈이 남긴 인지적, 감정적 여운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다른 학자들과 종종 협업하며 한국과 유럽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문화적 해석을 시도한다. 작가는 런던 한국문화원, 웰컴 컬렉션 의학 박물관, 타비스톡 연구소 등에서 진행한 이 워크숍들을 통해 꿈에 좀더 경험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이 워크숍에서 중요한 지점은 친근한 분위기의 임시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집단으로 꿈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그룹 대화를 통해 꿈의 정경이 모여 어느 개인의 의식이나 문화적 배경을 넘어선 공통성 또는 공유된 경험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드림 리츄얼> 공연에서 제작된 영상을 포함에서 박봉수 작가의 여러 영상작품들에서 역시 사회학적 관점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반사면 위 차진엽 무용가의 몸동작을 포착한 몸의 왜곡된 이미지는 겹겹이 중첩되고 해체되어 몸은 문양 속으로 녹아들어 패턴을 이루며 만화경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형태가 움직이며 새로운 형태를 다시 반사하면서 손과 발, 옷은 다시 안과 밖으로 변형되어 가독성의 경계를 오간다. 최면을 건 듯한 그런 형태는 추상적 형태를 해석해 의미와 감정을 찾아내는 로르샤흐 심리 검사와 흡사하다. 

 

박봉수 작가는 워크숍과 온라인에서 꿈을 수집해 꿈을 사고파는 전통을 퍼포먼스적인 옥션으로 재현한다. 여기서 퍼포먼스적이라 함은 꿈을 사고파는 것을 임시 시장으로 옮겨가 꿈이라는 무형의 개념에 물리적 가치를 부여하는 복합적인 과정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또한 이 옥션은 일상적 관습을 형식화하는 역할을 하며 꿈에 금전적 가치를 매길 때 주관성이 개입되는 꿈의 가치 구조를 다룬다. 누군가 친구에게 꿈을 살 때 상징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불하는 가격이 아니며 그 거래의 소중함은 돈보다는 실제 교환 행위 자체에 있다. 이로써 <드림 옥션>은 꿈 거래의 상업화가 아니라 꿈을 사고파는 일이 물질 영역 밖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한다. 꿈 거래의 영향력은 사회, 개인 그리고 가까운 관계 사이에 머문다. 즉, 꿈 거래는 공식적인 경제 구조와 달리, 개인의 인식을 바탕으로 협상하고 수용해 성사되는 개인간의 가치 교환 과정이다.

 

개인의 경험과 관객 참여를 통해 접근한 또 다른 프로젝트 <인터널 라이브러리 Internal Library>는 2017년 런던의 프린트 룸에서 선보였다. 겹겹의 반투명 천이 미로 같은 형태로 매달려 있고, 참여자들이 제출한 기억의 단어들이 벽과 천 사이 통로 위에 투사된다. 이 프로젝트에서 박봉수 작가는 꿈에 한정 짓지 않고 관객들 내면의 생각을 다뤘다. 참여한 관객들이 적어낸 글과 생각의 조각들은 대개 친밀함과 그리움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공간은 개인의 자기 성찰을 동반한 애수 띤 분위기를 형성했다.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진 이 미로 같은 공간은 이따금 천천히 불이 들어오는 전구로 밝아지는데, 이 불빛은 타자기가 얹힌 책상을 비춘다. 이 공간에 들어간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내면의 독백을 글로 남김으로써 주변을 부유하는 글자들의 코러스에 참여하게 된다. 작가는 새롭게 모인 단어를 텍스트로 전환해 작품에 추가하고, 이 글자는 다양한 감정이 공중에 주마등처럼 떠다니는 통로에 떠오른다.

 

꿈이든 숨겨둔 감정이든 개인적인 이야기이든 우리 내면의 생각과 감정은 대개 혼자만이 품는 개인의 것이라 치부되지만, 박봉수 작가는 이러한 각자의 관심을 밖으로 드러내게끔 유도한다. 그녀의 작품은 내면의 공간이라는 배경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박봉수 작가의 프로젝트는 어쩌면 우리가 늘 느끼지만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감정을 꺼내 놓는다.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우리 개인의 생각이 사회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잠재의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얻는다.